퇴사 후 배임 혐의를 받았다면

안녕하세요. 의뢰인의 입장에 서서 최선을 다하는 권우상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밤잠을 설치셨을 거예요. 회사를 나온 뒤 갑자기 배임이나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연락을 받으셨다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감각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걸 써먹은 적도 없는데?" 싶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그 생각과는 다른 방향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배임과 영업비밀 누설, 대법원이 내린 결론
2026년 1월, 대법원 2025도11906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영업비밀을 상대방에게 알려주거나 넘겨주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위반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상대방과 "이걸 같이 쓰자"고 약속했는지, 실제로 함께 사용했는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넘긴 사실 자체가 범죄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넘겨받은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취득 자체로 별도의 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업무상 배임 혐의와 함께 기소된 사안
이었는데, 대법원은 영업비밀 보호의 범위를 한층 넓게 해석했습니다.
함께 사용해야 처벌된다? 흔한 오해 vs 실제 판단
"넘기기만 하고 쓰지 않았으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을 상담에서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의 답은 명확합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항구를 떠나는 배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화물을 싣고 출항한 순간, 이미 운송은 시작된 겁니다. 화물이 목적지에 도착해서 하역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영업비밀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게 건네는 순간, 누설이라는 항해는 이미 출발한 것이고, 그것만으로 법은 처벌 대상으로 봅니다.

대법원은 그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취득, 사용, 누설, 무단 유출을 각각 독립된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용이 반드시 누설에 뒤따라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업무를 통해 영업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도의 취득 없이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법은 "누설"과 "사용"을 묶어서 하나로 보지 않고, 따로따로 판단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누설 자체를 범죄로 보지 않고 "사용해야만 처벌된다"고 해석하면, 오히려 영업비밀을 넘긴 뒤 사용까지 시도한 사람이 미수범(범행을 시도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경우) 감경을 받아 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모순이 생깁니다.
대법원은 이런 처벌의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라도 누설 자체를 독립된 기수범(범행이 완성된 경우)으로 본다고 판시했습니다.

배임 혐의의 출발점, "목적"이라는 열쇠
그렇다면 영업비밀을 알려준 모든 경우가 처벌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법이 요구하는 것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목적 없이 단순한 실수로 정보가 흘러간 경우와, 이직한 회사에서 활용하려는 의도로 넘긴 경우는 전혀 다르게 평가됩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에야 전략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행위처럼 보여도, 그 배경과 목적에 따라 혐의의 성립 여부가 완전히 갈리거든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 정황을 정확히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날씨가 흐리다고 반드시 비가 오는 건 아닌 것처럼, 혐의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곧 유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먹구름이 보일 때 우산을 준비하듯, 혐의 초기에 사실관계를 빠짐없이 점검하는 것이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퇴사할 때 USB에 자료를 담아 나왔는데, 사용하지 않았어도 처벌되나요?
A.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무단으로 반출한 행위 자체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유출 또는 취득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용 여부와 별개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반출 경위와 자료의 성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Q. 영업비밀과 단순한 업무 지식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A. 영업비밀로 인정되려면, 그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것이어야 하고,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며, 비밀로 관리되고 있었어야 합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단순히 업무를 하면서 쌓은 일반적인 경험이나 지식과는 구별됩니다.
Q. 배임 혐의와 영업비밀 침해는 별개의 죄인가요?
A. 별개입니다. 업무상 배임(형법 제356조)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 성립합니다. 영업비밀 침해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두 혐의가 동시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재직 중이시든, 이미 퇴사하셨든 관계없습니다. 오늘 바로 이것부터 확인해 보세요.
퇴사 전후로 회사 자료를 외부로 옮긴 적이 있는지, 그 자료가 영업비밀 관리 대상이었는지, 그리고 그 행위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이 세 가지를 스스로 정리해 두시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대응에서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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